살다 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비난과 무례함에 마주한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유 없이 나를 비난하고, 내 존재를 깎아내리며 우습게 보는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비난이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수준이 그 정도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들이 무례하고 이해 없는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일일이 설명하려 들고, 나를 해명하려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면 애초에 비난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무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분노를 이겨내는 방법 중 가장 지혜로운 자세는, 그 사람의 행동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 저 사람의 지성이 여기까지구나”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분노의 지점에서 물러서게 하는 내면의 기술이며, 나 자신을 지키는 태도이다. 강연자는 괴테의 시를 인용하며 그 메시지를 극적으로 풀어낸다. 누군가가 나를 절벽에서 밀었을 때, 우리는 날개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해석이 감동을 준다. 그 사람은 나를 밀었지만, 동시에 내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먼저 본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국 비난은 되돌아와 그 비난자의 현실이 된다. 그는 내가 떠오르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해야 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한다.
“마음껏 나를 밀어라. 너는 내가 날아가는 모습을 가장 먼저 본 목격자일 뿐이니까.”
이러한 삶의 태도는 단순히 고결한 도덕적 태도만이 아니라, 지성과 자기 존중에 기반한 생존의 기술이다.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가 더욱 정중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는 그에게 예의를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지키기 위함이다. 정중함은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위한 ‘감정적 방어’**다. 상대가 무례하다는 것은 그는 배려와 존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며, 배려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배려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먼저 배려를 건네고, 그가 언젠가 그것을 깨닫기를 기대하는 태도야말로 성숙한 사람의 방식이다.
예를 들어 좁은 길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절대 비켜주지 않고 당당하게 밀치고 지나갔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욕하기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저 사람은 밀치고 지나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구나.” 그리고 “배려 경험치 1을 줬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덜 상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타인의 언행에 반응하지 않고, 내 감정의 주도권을 내 안에 두는 방식이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정할 수도,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다정함은 단순한 착함이나 상냥함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감정지능, 표현력, 통찰력이 결합된 고도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진짜 다정한 사람은 지성 있는 사람이다. 괴테는 말한다.
“최상의 것은 다정한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결점이 아닌 장점을 찾아내어, 다정한 언어로 전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존재의 품격이다. 그러나 다정한 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상대의 장점을 볼 수 있는 안목,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적 능력, 그리고 그 말에 진심이 담길 수 있는 감정의 깊이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사가 필요하다. 괴테의 문장, 정제된 언어, 깊이 있는 문장을 반복하여 손으로 쓰고, 마음에 담는 과정이 쌓일 때 우리는 내면의 언어, 다정한 표현, 생각의 깊이를 갖춘 사람이 된다. 독서와 글쓰기, 필사는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품격을 채우는 방식이다.
일상의 소소한 장면 속에서도 이러한 철학은 녹아 있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에서 연인이 30분 동안 와인 한 병의 가격을 비교하며 고민하는 모습은, 겉으로 보면 하찮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강연자는 그 시간을 값싼 시간을 소비해 값비싼 행복을 얻은 투자로 해석한다. 이런 장면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풍경이라는 것이다. 괴테는 말했다. “좋은 것은 언제나 당신 가까이 있다.” 그 말처럼, 사소한 행복을 알아보고 붙잡는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키워야 할 감각이다. 행복은 복잡하고 멀리 있지 않다. 가까이에 있는 단순한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삶은 가장 단단해진다.
이처럼 **삶에서 중요한 건 ‘경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괴테를 15년간 읽어온 강연자는, 책을 다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문장이 내 눈을 멈추게 했는가”를 묻는 것이라 말한다. 이 문장이 나의 시선을 붙잡고, 나의 감정을 움직였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이해했고, 내 삶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는 증거다. 그래서 책을 다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에 감동하고 그 문장으로 하루를 살아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독서다. 그 문장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가 평범하게 지나치던 수많은 풍경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질문을 품고 사는 사람만이, 매일의 삶에서 ‘다른 세계’를 본다.
결국 지속적으로 읽고 쓰는 사람은,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가장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평생 한 동네를 떠나지 않았음에도 전 세계인에게 영향을 미친 이유는, 공간의 이동보다 ‘사고의 이동’이 더 크기 때문이다. 변화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된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새로운 문장을 품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은 매일매일 새로워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삶을 반복하게 된다.
따라서 독서는 단지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문장을 통해 나를 단련하고, 사고를 키우며, 감정을 정제하고, 표현의 품격을 기르는 가장 고귀한 훈련이다. 내 수준은 내가 이해한 문장이 결정한다. 내가 어떤 문장을 이해하고, 어떤 문장을 경탄했는지가 곧 내 철학이고, 내 세계이고, 나의 품격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 당신의 시선을 멈추게 한 한 줄이 무엇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