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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의 중요

by coven20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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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교육 전문가는 뇌의 발달과 독서 간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실험 결과를 토대로, 독서의 중요성과 그 효용에 대해 과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는 특정 행위들을 할 때 뇌파를 검사한 실험에서, 전두엽이 가장 활발하게 작동한 활동이 공부가 아닌 독서였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는 단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니라, 독서가 인간의 사고와 뇌 기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사례로 제시된다. 왜 독서가 공부보다 더 높은 전두엽 활성화를 유도하는지를 분석하면서, 그는 읽기를 담당하는 특정한 뇌의 영역이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곧 독서라는 활동이 뇌 전체의 다양한 영역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고도 복합 인지 활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글자를 인식하는 시각적 입력부터 시작해서, 이를 이미지로 전환하고,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과거의 지식을 동원해 소리로 바꾸며, 그 소리를 의미로 연결시키고, 마지막으로 이 의미를 기존 기억과 결합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뇌 전체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이 패스를 주고받으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각 뇌의 부위들이 상호 협력하여 독서라는 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그 복잡성과 정교함은 뇌 발달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뇌과학적 설명을 바탕으로 그는 현대 교육 과정에서 독서의 현실을 되짚는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문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중학생 중 최소 70%가 자기 학년 교과서를 스스로 읽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인 통계이다. 이는 단지 학습 능력 저하의 문제가 아니라, 영유아기 독서 지도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그렇게 많은 부모들이 열심히 책을 읽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교육열이 높고, 영유아기에는 책 읽어 주기를 매우 성실히 수행하지만, 정작 독서 문화는 자리 잡지 못한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심지어 사기업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92%의 부모가 하루에 30분 이상 책을 읽어준다고 답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문해력은 중학교에 도달하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책 읽어주기”와 “독서”는 엄연히 다른 개념임을 강조한다. 영유아기는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없는 시기이므로, 엄밀히 말해 이 시기의 책 읽어주기는 독서가 아니라 상호작용 기반의 놀이에 가깝다.

 

 

영유아기의 독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아이가 책을 사랑하는 경험을 하느냐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책을 펼치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 그 속에는 사랑받는 느낌, 신체적 접촉, 감정의 교류가 포함되어 있어 책 읽어주기라는 행위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정서적 유대와 연계된 상호작용이 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독서 교육이 실패하는 이유는, 독서를 공부의 도구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전래동화로 시작된 독서가 점차 한국사, 세계사, 사회, 정치 전집으로 확장되며, 아이는 읽고 싶은 책보다 부모가 주는 책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독서에 접근하게 된다. 이때부터 독서는 놀이가 아닌 공부로 인식되기 시작하며, 아이는 점점 책을 멀리하게 된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많은 아이들이 독서기를 벗어난다. 이러한 흐름은 아이가 자율적으로 책을 고르고 읽는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독서 지도의 핵심은 아이가 책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며, 이를 위해선 책 읽어주기를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즐기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서적 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영유아기에는 전두엽이 학습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 시기 아이에게 학습을 강요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어 정서의 뇌 성장을 방해하게 된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영유아기의 문자 학습을 사실상 금기시하고 있으며, 이는 과학적 기반을 가진 교육 정책이다. 책 읽어주기가 좋은 이유는 상호작용과 사랑을 기반으로 한 놀이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때 아이의 정서적 안정감과 뇌 발달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으며,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 부모와 함께 읽는 과정이 가장 고강도의 지적·정서적 행위로 작용한다.

 

 

따라서 가장 좋은 책은 아이가 스스로 고른 책이다. 부모는 도서관에서 15권 정도의 책을 빌릴 때, 10권은 아이가 고르게 하고, 5권은 부모가 선택해서 아이에게 제안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그리고 책을 읽기 전, 아이가 오늘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를 직접 고르게 하는 것이 상호작용의 강도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아이가 책 읽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 원인은 대부분 부모의 낮은 연기력 혹은 아이의 흥미와 맞지 않는 책 선택, 또는 이미 한글을 익혀 책 읽어주기를 유치하게 여기는 자의식 등에서 비롯된다.

 

이런 경우 부모는 아이에게 직접 이유를 설명하고, 책 읽어주기 시간의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부모가 시간을 내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행위는 존중받아야 하며, 아이 역시 이 행위의 소중함을 배워야 한다. 만약 아이가 책 읽기 시간에 장난감을 갖고 놀며 책을 BGM처럼 소비한다면, 이는 부모에 대한 존중의 결여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럴 때는 책을 읽든지, 놀든지 선택하게 하여 독서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이는 단순한 교육 차원을 넘어, 부모와 아이 간의 상호 존중의 태도를 기르는 방식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1, 2학년 시기에 많은 부모들이 저지르는 대표적인 실수가 있다. 아이가 “책 읽기 시간이에요”라고 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책을 들고 와서 “아빠, 읽어줘”라고 한다. 이때 부모는 “너 이제 동생 아니야. 스스로 읽어야지”라고 말하며, 책을 혼자 읽도록 강제로 전환시킨다. 이 순간이 바로 독서 문제의 시발점이 된다. 아이는 울며 겨자 먹기로 혼자 읽게 되는데, 실제로 읽는 모습을 보면 매우 느리다. “철수가… 이렇게… 있습니…” 식으로 천천히 소리 내어 읽는데, 이는 독서가 아니라 ‘표음 문자 조립’ 행위를 하는 것이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단어를 만들어가는 기술적 훈련에 가깝다. 아이는 단지 음운 해독 훈련을 하고 있을 뿐, 책의 의미나 맥락은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다시 “무슨 내용이었어?”라고 물어보지만, 아이는 당연히 대답하지 못한다. 내용 파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상태는 독서가 아니라 ‘기계적 독해’에 머무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옆집 똘똘이’ 같은 사례가 존재할 때 생긴다. 어떤 아이는 비교적 빠르게 읽기 자동화를 이뤄내어 유창하게 읽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목격한 부모는 “우리 아이는 왜 저렇게 못하지?”라고 생각하며 불안감에 휩싸이고, 그 불안은 다시 아이에게 압박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최승필은 초등 1, 2학년 시기를 ‘독서 준비기’로 규정한다. 이 시기는 스스로 책을 읽고 이해하는 단계가 아니라, ‘읽기 자동화’를 준비하는 시기다. 읽기 자동화란, 글자를 읽으면서도 읽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읽는 상태를 말한다. 눈만 대면 문자가 저절로 읽혀지는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독서’가 가능해진다. 이 상태에 이르러야만 책을 읽는 것이 곧 사고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읽기 자동화는 아이마다 시기가 다르다. 어떤 아이는 1학년 1학기에도 가능하지만, 어떤 아이는 2학년 2학기까지 걸릴 수 있다. 11개월에 걸음마를 한 아이와 13개월에 걸음마를 한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는 걷는 속도에 차이가 없듯, 읽기 자동화 시기의 차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강제로 읽게 만들면서 책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읽기 독립을 이루는 과정에서 책을 싫어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여기에 있다. 부모가 강제로 책을 읽히고,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숙제처럼 여겨야 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읽기 독립의 형태는 “영유아기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한다. 도서관에 함께 가서 아이가 직접 책을 고르게 하고, 그 책을 집에 와서 읽어달라고 하면 기꺼이 읽어주는 방식이다. 부모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해서 과연 읽기 독립이 될까?”라고 걱정할 수 있지만, 실제 사례를 통해 이러한 방식이 매우 효과적임을 증명한다. 그는 서점을 운영하며 직접 겪은 한 아이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 아이는 영유아기부터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스스로 고르는 경험을 쌓았고,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도 여전히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방식으로 독서를 이어갔다. 문제는 이 아이가 오빠의 영향으로 늘 과학책만 빌려왔다는 점이다. 본인이 그 책을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좋아하는 오빠를 따라 과학책을 빌려왔고, 당연히 읽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흥미를 반영한 책을 고르기 시작했고, 공주 이야기가 실린 옴니버스 책을 선택한 날, 처음으로 혼자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장은 몇 페이지 읽다가 지치고 멈췄지만, 이후에도 읽고 싶은 마음에 조금씩 읽어갔고, 결국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데 성공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그림이 예뻤기 때문”이었다. 읽기 독립은 이렇듯 자연스럽고 느리게, 그러나 강하게 아이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 책이 너무 재밌어 부모가 읽어주기를 기다릴 수 없을 때, 아이는 자발적으로 읽기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읽기 독립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독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형성된다.

 

 

더 나아가 독서의 확장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책을 보면 “두껍다”는 생각과 “재밌을 것 같다”는 기대가 동시에 드는데, 흥미가 두께를 이길 때, 독서의 확장이 가능해진다. 이는 성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칙이다. 따라서 독서 확장은 흥미에서 출발하고, 반복되는 긍정적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도서관 방문이 생활화되어야 한다. 주기적으로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고, 집에서 함께 읽는 루틴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기본적인 독서 생활만 유지된다면, 읽기 독립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최승필은 학습만화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힌다. 그는 예전 영상에서 학습만화를 부정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었고, 이에 대해 시청자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받았다. 학습만화를 통해 책을 좋아하게 된 사람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는 이 점에 대해 명확히 정리한다. 학습만화를 읽는 것이 표음 문자 조립이라는 점에서 ‘읽기 자동화’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학습만화가 글책 독서를 대체하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100명의 아이가 학습만화를 접하면, 이 중 98명은 학습만화만 읽게 되고, 글책 독서를 멀리하게 된다. 따라서 문제는 학습만화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이 ‘독서’로 인식되어 다른 모든 책을 대체하게 되는 데 있다.

 

 

그래서 아이가 학습만화를 읽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독서’로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다. 학습만화는 장난감, 스마트폰과 동일선상에서 취급되어야 한다. 놀이의 일환으로 즐기는 것은 괜찮지만, 독서 시간에는 학습만화가 아닌 글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책을 읽어줄 때도, 반드시 별도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책을 중심으로 한 상호작용이 이뤄져야 한다. 만약 부모가 초등 입학 후 “이제 책은 혼자 읽는 거야”라고 말하며 책 읽어주기를 중단한다면, 아이는 독서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최승필은 이때의 책 읽어주기를 ‘가족 독서 시간’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부모도 자신의 책을 읽고, 아이도 자기 책을 읽는 시간, 이 시간을 매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독서 지도의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흔히 겪는 또 하나의 문제는, 학교에서 주는 독후감 숙제나 독서록 작성을 학습만화를 읽고 해결하려는 경우이다. 최승필은 이 또한 매우 부적절한 방식이라고 경고한다. 학습만화는 어디까지나 정보 전달을 ‘그림’이라는 강력한 시각적 자극에 의존하여 구성된 콘텐츠이다. 이 때문에 아이는 내용을 따라가는 데 있어 ‘읽는 행위’보다는 ‘보는 행위’에 더 많은 의존을 하게 된다. 물론 말풍선을 읽는다는 점에서 표음 문자 조립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 독서의 강도는 글책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래서 아이가 학습만화를 즐기는 것은 괜찮지만, 그것이 ‘진짜 독서’가 아님을 명확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태도가 독서 지도의 성패를 가른다고 강조한다. 영유아기와 초등 저학년기의 독서는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부모가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독서 경험이 발생할 수 없는 시기이며, 초등 고학년 이후의 독립 독서로 이어지기 위해선 초등 저학년기까지 책을 사랑하게 만드는 경험이 필수적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야 해”라고 말로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책을 읽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는 ‘가족 독서 시간’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하루 40분에서 1시간 정도, 각자 자신의 책을 들고 같은 공간에서 읽는 것이다. 이때 아이가 읽는 책은 만화책이 아니라 글책이어야 하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는 독서가 특정 시기에만 이루어지는 일회성 교육이 아니라, 생활 속 습관으로 정착되게 만드는 핵심 장치가 된다.

 

 

독서 교육의 범위를 넘어, 그는 '슬로 리딩(slow reading)'이나 ‘온책 읽기’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슬로 리딩은 책을 천천히, 반복해서 읽으며 책 속의 맥락이나 의미, 상징을 깊이 파악하는 독서 방식이다. 이는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매우 강력한 학습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초등학교 3학년 이하의 학생들에게는 이 슬로 리딩을 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은 책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강하고, 이미지와 맥락을 감정적으로 통합해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를 어른처럼 분석하고 분해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아이들의 독서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으며, 오히려 독서 자체를 왜곡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아이는 토끼나 거북이를 어떤 상징적인 존재로 분석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단순히 이야기 자체를 이미지화하고, 그 캐릭터의 감정과 상황에 이입하여 이야기를 즐긴다. 이를 억지로 해석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동심을 훼손하고,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창의적인 사고의 흐름을 제한하게 된다. 따라서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독서를 감상적이고 감각적인 행위로 경험하도록 해야 하며, 분석이나 해석은 그 이후의 사고가 분화되기 시작하는 시기부터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반복 독서, 필사, 질문 독서 등도 마찬가지로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강제되었을 때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런 독서 방법들은 독자가 자발적으로 ‘이 책 너무 좋다, 한번 필사해보고 싶다’는 감정이 생겼을 때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아이가 그런 동기를 갖지 않은 채 시키는 대로 필사를 하거나, 반복해서 읽으라는 지시에 따라 억지로 책을 읽는다면, 독서가 곧 고통스러운 과업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독서 교육과 관련된 여러 지점에서 “초등 3학년 이후”를 중요한 분기점으로 제시한다. 이 시기부터 비로소 아이의 전두엽이 학습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달하며, 논리적 사고와 해석적 독서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초등 3학년 이전에는 독서 논술 수업이나 필사, 슬로 리딩 등의 활동을 피하고, 오히려 자유롭게 읽고 즐기는 방식으로 독서를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초등 4학년부터 본격적인 문해력을 키우고 싶다면, 독서 논술 학원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여기서도 전제가 있다.

아이가 책을 잘 읽지 못하고, 문해력에서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라면 독서 논술 학원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이미 책을 좋아하고 잘 읽는 경우라면, 논술 학원은 독서 능력을 더욱 확장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독서 논술 학원의 교재가 아이의 독서 생활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독서 논술 교재만 읽고, 따로 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아이의 자발적 독서 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상적인 경우는, 아이가 독서 논술 수업을 통해 자극을 받고, 그 자극이 다시 일상적인 도서관 독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럴 때, 학원의 도움은 오히려 독서 생활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긍정적 요인이 된다.

 

 

최승필은 이처럼 독서 지도와 독서 문화의 차이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취한다. 많은 부모들이 독서를 가르치는 것을 독서 교육이라 여기며, 아이가 필독서를 읽게 하거나, 교과 연계 도서를 읽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이것은 독서 ‘문화’가 아닌, 독서 ‘교육’이며, 이 방식이 오히려 아이의 자발적인 독서 습관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독서 문화는 아이가 책을 스스로 고르고, 그것을 즐기며 읽고, 가족과 공유하는 일상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교육은 일시적이지만, 문화는 지속적이다. 따라서 아이가 진짜 독서가로 자라기 위해서는, 독서 문화를 일상에 정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이런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 영유아기와 초등 저학년을 위한 독서 지도서인 ‘공부머리 독서법’의 세부 버전을 집필했다고 설명한다. 독서 교육은 학교나 학원에서 다뤄질 수 있지만, 독서 문화는 가정에서만 길러질 수 있다. 특히 책을 좋아하고 즐기는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이 독서 문화의 시작이자 전부이며, 부모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최승필은 마지막으로 이런 제안을 남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단지 아이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부모도 함께 책을 읽는 사람이 되어 가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독서의 여정 속에서, 부모도 책의 즐거움과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가족 독서 문화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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