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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초불확실성 시대 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by coven20 2025.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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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초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사회적, 기술적, 환경적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은 기존의 직업과 산업의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으며, 사람들은 기술로 인해 직업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과 함께, 인간으로서의 존재 의미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담론이 주는 충격과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해석해 보면, 과연 그것이 전적으로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아래에서는 이 담론이 내포한 주요 주장에 대해 구조적으로 검토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맹점들과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1. 초불확실성은 새로운 개념인가?

먼저 ‘초불확실성’이라는 용어 자체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류는 항상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왔다. 산업혁명, 세계대전, 대공황, 인터넷의 출현, 9.11 테러 등 예측 불가능한 사건은 과거에도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 다만 오늘날에는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이러한 사건들의 ‘인지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빨라졌을 뿐이다. 이는 실질적인 불확실성 증가라기보다는 인지된 불확실성의 확대에 가깝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초불확실성'은 실체가 있는 현상이라기보다는, 시대적 불안을 반영하는 사회적 구성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불확실성 담론은 기술 변화의 속도에 압도당한 현대인의 심리적 불안을 과도하게 일반화하거나, 오히려 위기를 과장함으로써 정치적, 경제적 담론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여지도 있다.


2. 기술 발전이 인간의 존재 가치를 위협하는가?

AI 기술이 빠르게 진보하면서 인간의 일자리와 역할이 위협받는다는 주장은 과연 타당한가?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왔다. 기계식 방직기의 등장으로 수많은 직공이 직장을 잃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직종도 탄생했다. 자동화와 디지털화는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노동을 줄였고, 그 자리에 더 창의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의 일이 부상했다. 따라서 문제는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느냐가 아니라, 인간이 기술과 함께 어떤 가치를 창출하느냐에 있다.

또한 ‘AI가 논문을 쓰고 지식을 정리하는 시대’라는 주장도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AI는 대량의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데 강점이 있지만, 진정한 학문적 창의성과 개념의 비판적 해석, 맥락에 대한 통찰은 여전히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특히 인문사회학 분야에서는 데이터보다 관점이 중요하며, 단순한 정보 수집 이상의 철학적, 윤리적 해석이 필요하다. 따라서 "AI가 교수의 역할을 대체한다"는 주장은 일면적이며, 인간이 가진 교육적, 정서적, 관계적 기능을 간과하는 접근이라 할 수 있다.


3. 회복탄력성(Resilience) 담론의 이중성

회복탄력성은 분명 중요한 개인 및 사회의 역량이다. 그러나 회복탄력성을 강조하는 담론에는 위험한 측면이 있다. 그것은 위기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대량 실업이 발생했을 때, '회복탄력성이 부족하다'는 말은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정신력 부족으로 환원하는 논리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회복탄력성은 교육, 소득, 건강, 사회적 지지 등 다양한 배경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개인에게 무한한 자기 회복을 요구하기보다,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과 정책적 배려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회복탄력성은 종종 ‘복원’ 혹은 ‘적응’이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릴 위험이 있다. 진정한 변화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이며, 때로는 시스템을 전복시키는 상상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리질리언스 담론은 기존 질서 내에서의 적응을 유도하는 데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현상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흐릴 가능성이 있다.


4. 미래 문해력(Futures Literacy)의 환상

‘미래 문해력’은 매우 매력적인 개념이다. 정보의 진위를 가릴 줄 알고, 기술의 흐름을 이해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능력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이 개념이 지나치게 이상화될 경우 또 다른 위험이 발생한다. 첫째, 미래 문해력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복잡한 시스템에 대한 과도한 신뢰로 이어질 수 있으며, 오히려 미래에 대한 경계심과 성찰을 약화시킬 수 있다.

둘째, 미래 문해력을 가진 ‘엘리트’ 집단과 그렇지 못한 다수의 간극이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누가 미래를 잘 읽고, 해석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 이는 교육, 정보 접근성, 디지털 리터러시 등에 따라 편차가 크며, 결국 사회적 자본의 차이로 연결된다. 미래 문해력이 '가능성'이 아닌 또 하나의 ‘스펙’으로 작용하게 될 때,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능력주의와 경쟁을 낳을 수 있다.


5. 기술 담론에 가려진 윤리와 인간성의 문제

AI와 기술 담론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정작 중요한 인간적 가치와 윤리적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기술이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감정, 공감, 공동체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담론은 주로 경제적 효율성과 기술의 속도에만 초점을 맞추며, 인간의 의미, 존재의 목적, 공동체적 윤리 등과 같은 본질적 논의는 소외되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일’을 대체할 수는 있어도 ‘존재’를 대체할 수 없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를 기술적 논리로 재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도, 노동도, 인간관계도 점점 더 ‘성과’, ‘속도’, ‘지표’ 중심으로 측정되고 있으며, 이는 인간의 내면적 가치와 고유한 삶의 방식을 위협하고 있다.


결론: 위기를 넘어서는 상상력과 공동체의 힘

AI와 초불확실성 시대는 단지 위기의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기술과 사회, 윤리의 경계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시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공포나 맹목적 수용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상상력,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다. 우리는 기술을 활용할 수 있지만, 기술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주체가 되는 미래를 위해서는 회복탄력성과 미래 문해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며,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더욱 빛을 발할 ‘연결과 돌봄의 가치’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단지 누가 AI를 잘 다루느냐가 아니라, 누가 인간과 기술 사이의 균형을 지키며 공존의 미래를 상상하고 실천하느냐가 핵심이 될 것이다. 기술은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니다. 그 목적은 결국 '더 나은 인간됨'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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